볼프강 - 강희창 시인 홈페이지




















  qqpp(2003-08-22 14:27:47, Hit : 10043, Vote :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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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고향 내포와 서해대교




서해대교!!!!!

탄생때 고생과 추억이 어린, 개통이벤트에 볼프강이 8개월을 온전히 바쳐 
감독 했던  -2000년 서해대교 개통 이벤트- 

[개방-바다위 40리 건너기(도보, 롤라보드, 자전거). 바다단축마라톤대회(5000명), 
시루떡잇기, 민속.지역화합놀이, 해상불꽃놀이, 전국노래자랑, 기지시줄다리기, 
안섬풍어제......7일간 105만명 참여, 고속도로중 첨 국민에게 먼저 개방
....거기서 자전거포(임대업) 하신 분이 6일만에 8천만원 벌었대유, 글쎄 ]

그 근처에 제가 자주가는 삽교천, 맷돌포, 부리포, 한진항, 안섬, 대호방조제,
성구미, 왜목, 남당리, 안흥.......참말로 순박하고 풍요로운 곳이거든요.....마음이


서해대교 중간에  행담도(한말 오페르트사건 배 정박지) 휴계소- Ocean resort Park 
에서 잠시 쉬어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갯내음 맡고 가시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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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숭산 수덕사(정혜사)에서 바라본 고향뜰 / 용봉산-백월산-오서산이 보입니다
   들판 한가운데로 와룡천(신천내깔)이 흘러 가까이 서해바다 담당포구쪽으로 
   빠지는게 보이구요
   들판 끝쪽 좌우엔 백야생가, 만해생가, 성삼문생가 그리고 사진 좌측 바깥쪽에는 
   덕산온천, 윤봉길생가, 남연군묘.....
   우측으로 뻗어가는 줄기는 금북정맥중에 가야산에서 갈라지는 삼준산 줄기, 즉 갈산지맥
   그 끝자락에 진주강씨 선영이 보입니다 
   가운데 백월산 우측이 고향 마을- 용봉산 앞 들판으로 충남도청이 옮겨온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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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포문화권 >>>

백두대간의 등골을 타고 내리다가 속리산 문장대에서 분맥을 형성하여 안성의 칠현산까지 
흘러가는 산세를 한남금북정맥이라 한다. 

산세는 이곳 칠현산에서 다시 두 줄기로 갈라진다. 

서북향하여 흐르는 산세를 한강의 남쪽 아래에 위치하여 흐르는 산세라 하여 한남정맥이라 
하고, 서남향 하는 산세를 금강의 북쪽으로 위치하여 흐르는 산세라 하여 금북정맥이라 한다. 

이러한 의미로 금북정맥이라 불리우는 산세는 한남금북정맥의 막바지지점 칠현산에서 
서남향하여 힘차게도 뻗어내려 안성의 서운산. 천안의 흑성산. 국사봉. 광덕산. 차유령. 
청양의 일월산. 홍성의 보개산. 아차산. 오서산. 보령의 성주산을 세운 후, 역으로 고도를 
180°돌려 해안선을 따라 다시 북쪽을 향해 대략 40km가량을 올려 치니 명덕산, 삼준산 
홍성의 용봉산. 예산군 덕산면의 수암산. 덕숭산(수덕사). 가야산을 세운다. 

...홍성을 지나 삼준산을 빚어 놓은 다음, 노적봉 - 가야산(일명 가사봉) - 석문봉 - 옥양봉을 
들어올리고는 두 가닥으로 나뉘어져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은 일락산을 들어올린 후 
서산 앞바다로 가라앉고, 옥양봉에서 북동으로 달아나는 산릉은 상왕산을 빚어 놓고, 
그 여맥을 당진 평야에다 묻는다.
가야산은 예산군과 당진군, 서산군 등 3개 군에 걸쳐 들판에 우뚝 솟아 산세가 당당하고 
곳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은은한 풍경을 자아낸다. 


산세는 이곳 가야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속삭이듯 유순한 물결이 흐르는 듯 아늑하게도 낮은 야산을 형성하며 당진지방과 
서산지방의 외곽 들녁을 휘감아 돌아 포근히도 바람막이가 되었다가는 다시 또 한번 
우뚝이도 팔봉산을 세우고는 태안반도로 건너가 안흥진 앞 바다에 떨어진다.

이같이 금북정맥의 산세가 U자 형으로 휘어 감은 그 안쪽 지역을 내포지역이라 한다. 

이 지역을 내포지역이라 함은 통일신라시대 때, 이곳 내포지역의 산수가 너무나도 
좋았기에 가야산의 원효봉에서 수도를 하셨던 원효대사께서 그의 저서 '원효결'에 
『烏聖之間(오성지간)은 산세가 수려하고 산의 기운이 뛰어나니 우리나라 국토의 
내장부와 같은지라 內浦(내포)라 한다.』라고 기술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여기서 '烏聖之間'이라 함은 오서산과 성주산의 사이를 말하는 것이니, 즉 아산. 
당진. 예산. 서산. 홍성. 보령 6개 지역으로서 아산만과 천수만의 사이, 그 안쪽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조선중기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은 『팔역지(일명 택리지)』에서 가야산의 
앞.뒤 주변 10고을(당진. 면천. 서산. 태안. 해미. 덕산. 홍주. 결성. 대흥. 보령)을 
내포지방이라고 하면서 <이곳은 가야산의 서쪽에는 큰 바다가 인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경기도와 바다를 사이로 하여 한 고을이 마주하며 바닷물이 내륙 안쪽 
깊숙이 까지 들어온 지형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라고 기술하고 내포지방을 " 
충청도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 " 이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洪州는 현재 홍성의 옛 
지명이고 대흥은 예산군 대흥면을 면천은 당진군 면천면을 해미는 서산시의 
해미읍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 전역에는 모두 3곳의 가야산이 있으니 경남 합천지방의 국립공원 가야산과 
충남 예산지방의 도립공원 가야산과 전남 나주시의 가야산인 바, 나주시의 가야산은 
공원으로 책정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시립공원이나 다름없다. 

이곳 내포지역의 가야산을 가야산이라 칭하게 된 것도 산세연봉의 모습이 경남 
합천지방의 가야산과 흡사 비슷하기에 원효대사께서 이곳에 머물면서 붙여놓은 
이름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이곳 가야산은 서해안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서 정상에 오르면 금북정맥의 
U자형 산세흐름이 그윽히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옥병계'라는 암벽에는 신라말기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洗耳岩(세이암) 
석자를 새겨 남겼다.

이 洗耳岩 석자는 鷄林黃葉 鵠嶺靑松(계림황엽 곡령청송)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겨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창업하게 됨을 예언하고는 종적이 묘연했던 최치원 선생의 
은둔지가 얼마 전까지는 합천지방 가야산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이곳 예산지방의 
가야산 이었음이 지방 향토사학자들에 의해 새로이 밝혀지는 확고한 자료가 되었다.

우리의 역사상 나라가 위난을 당했을 때, 구국을 한 인물들은 상고해 보자. 

최영장군. 무학대사. 성삼문선생. 토정 이지함. 이순신장군. 면암 최익현. 만해 한용운. 
김좌진장군. 윤봉길의사 그밖에도 수당 이남규선생. 이광임선생, 김대건. 심훈. 안견. 
추사 김정희, 이상재. 목은 이색.... 

한결같이 모두가 이곳 내포지역 출신의 인사들이었으니 우리나라의 내장부 역할을 
톡톡히도 해낸 셈이 아니겠는가.

..................................

충남지역의 생활권을 공간적 접근성 차원에서 장항선, 서해안 고속도로, 
당진 - 대전간 고속도로와 국도 21,32,45호선이 통과하여 공간적 접근성과 중심지로
수도권과 한나절 생활권으로 탈바꿈.

지형상 가야산 주변의 평야지대로 같은 문화와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 특징은 유흥준 문화유산답사기 3권 참조 ) 

이 지역은 우선 천혜의 해수욕장들과 천수만 철새도래지, 무창포 바닷길, 안면도 송림, 
용봉산 등 자연 자원과 더불어 문화자원이 풍족한 고장. 서산마애삼존불, 태안마애불 등 
백제 불상과 맹씨행단, 추사 고택, 수덕사 대웅전, 개심사 보원사지 안국사 등 불교 사찰과
해미읍성, 김대건 천주교 성지가 있다. 

서해대교-아산만-행담도-한진항-안흥항-왜목마을-삽교천함상공원, 방조제-남당리(대하)
-남연군묘-덕숭산-가야산-개심사-덕산온천-온양온천-대천.보령.태안 해안공원-갯벌,
항포구,각 해수욕장............................... 








qqpp (2014-09-03 16:13:26)  
http://blog.daum.net/zmstks/13090879
qqpp (2017-12-05 10:54:04)  
가야산 남쪽 산줄기는 낮아지면서 안부를 형성하여 한티고개를 이루고 고도를 높여 뒷산(447.6m)으로 솟고 다시 높이를 낮추어 또 안부를 이룬다. 이 안부로 연장이 고개와 해미고개가 형성되어졌으며 동쪽으로 갈라져 불끈 솟아오른 것이 수덕산(덕숭산이라고 함. 495.2m)이고 서쪽으로 뻗어 솟아오른 것이 연암산(440.8m)이다. 남쪽으로 뻗어나가다 불끈 솟아올라 삼준산(489.9m)을 이루고 계속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봉두산(362m)에서 동쪽으로 틀어 봉긋봉긋 솟아 범바위 운교봉과 명덕봉을 이룬다. 이 명덕봉에서 남쪽으로 틀어지면서 높이를 낮추어 안부가 되고 고도를 높여서 꾀골봉(202.2m)으로 솟아오르고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져 병암산으로 가라 앉는다. 명덕봉과 꾀골봉 사이의 안부에 이 산줄기 동서를 넘나드는 대기티 고개라는 길이 형성 되어 있었다. 옛부터 고북면과 고남면(지금의 갈산면 고도면으로 호칭하다가 갈산면으로 개칭되었음)의 서북부 부락에서 홍주 쪽으로 넘나들려면 꼭 이용하던 큰 고갯길이다. 1970년대 이후 자동차 교통이 발전하면서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다가 지금은 완전히 폐도가 되어버렸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4학년이던 삼촌과 고모님댁(예산군 삽교읍 수촌리)을 가느라고 넘어본 것이 기억에 남아 있는 이 고갯길과 나와의 첫 인연이다. 이후 학년이 올라가면서 삼준산이나 수덕산 쪽으로 원족(지금의 ‘소풍’이라고 함)을 갔다가 현지에서 해산하면 꼭 이 고개를 넘어 귀가하곤 하였다. 홍성의 농업 중학교에 진학하여 재학할 때 집에 다니러 갈 때도 이 고개를 넘나들곤 하였다. 당시 홍성에서 서산으로 가는 버스 편은 아침, 점심, 저녁나절에 한 번씩 하루 세 번 왕복할 뿐이었고, 운행하던 버스의 크기도 지금의 미니버스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갈산에서 내려야 하는 사람은 표를 사기가 쉽지 않았다. 빈 트럭이나 양곡, 비료 같은 낮은 짐을 실은 트럭에 사람을 싣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도 얻어 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50년 6월 1일 3학년에 진급하여 반이 새로 편성 배치되고 담임선생님도 새로 배정되고 학과목도 바뀌어 어수선하다가 안정되어 가는데 6·25사변이 발발하였다. 6월 25일 새벽에 북조선 인민군이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감행하였다. 나는 25일 오후에서야 이를 알게 되었고 외출, 휴가 나온 장병은 즉시 귀대하라는 확성기 방송이 시작되었고 난리법석 이었다. 27일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이 서울에 진입하게 되고 정부는 대전으로 옮기고 말았다. 7월 5~6일경으로 기억되는데 황해도 연백 옹진에 배치되어 있던 국군이 배편으로 당진, 서산으로 후퇴하여 홍성을 거쳐 도보로 남하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7월 10일 경에는 학교도 공동화 되어버렸다. 하숙집에서 책과 생활용구를 쌓아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 갈 때도 이 대기티 고개를 넘었다. 그 모진 3개월을 지내고 10월초 주위에 주둔해 있던 인민군이 모습을 감춘 뒤 세상은 또 다시 공동화 되어 버렸다. 어느 날 굉음을 울리면서 전차 한 대가 서산 쪽으로 달라가면서 꽈광! 포를 쏘면서 지나갔다. 다음날 남하하였던 경찰이 갈산 지서에 돌아왔고, 이제 해방되었다고 태극기를 흔들어 용대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울리면서 환호하던 면민들의 모습이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대한민군으로 수복된 것이다.

10월 중순 구장이 학교에서 등교하라는 연락이 왔다고 전갈해 주어 대기티 고개를 넘어 학교에 가보았다. 선생님들 중 모습이 보이지 않는 분도 계셨고, 학생들 중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은 학우들도 있었다. 당시는 학교의 체제를 정비하는 중이어서 어수선하였고 수업은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궁금하여 가끔 학교에 나가 보곤 하였다. 그러다 11월 어느 날부터 수업이 재개되면서 매일 대기티 고개를 넘나드는 통학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동네에서 홍성까지 30리라고 하는데 매일 왕래하였다. 나보다 더 먼 취생리에서 L군 H군, 봉두의 L형, 샛터의 K군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 대기티 고개를 넘나들며 같은 학교에 통학하였다. L군, H군은 엉굴(취생리)에서 제울(대사리)을 거쳐 작은 대기티를 넘어 봉두를 지나 대기티를 오게 된다.

대기티 초입에 길 아래 위에 주막이 두 집 있었다. 위 주막 앞을 지나 쪽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개천을 끼고 오르는데 오른쪽에는 다랭이 논이 있었다. 맨 위 다랭이 논을 지나 오르다보면 큰 고목나무가 있고 고목나무 주위는 돌무지로 되어 있고 나뭇가지에는 여러 색깔의 헝겊이 주렁주렁 매어져 있는 서낭당이 있었다. 여기서 150m쯤 오르면 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뒤돌아 조망하게 되면 물안이, 부꿀(부기리) 고개 너머로 천수만이 휜히 펼쳐져 보이고 간월도 안면도가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안부에서 산굽이 빙여길을 돌아가는데 안악굴 뒤 산줄기 위에 조성되어 있는 공동묘지를 지나면 노상부락으로 내려서게 된다. 빗돌골 주막 앞에 당도하면 안악굴 신촌에서 통학하는 친구들과 합류하게 된다. 구성굴을 지나 와룡천에 놓여 있는 섶다리를 건너 장명이를 지나 가추개를 거쳐 다랭이 천수답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길을 따라가면 무겁이 고개에 올라서게 되고 참나무쟁이가 내려다보인다. 참나무쟁이에 이르면 낙상리, 대동리, 사천리 등 수덕 안골 여러 동네에서 통학하는 학생들과 합류한다. 당시 홍성에서 해미고개 까지는 마차길이 나 있었는데 잘 관리하지 않아 노면은 엉망이었다. 장고개에 오르면 가루개(갈오리)의 친구들을 만난다. 월계고개에 올라서면 드디어 홍성 읍내가 내려다 보인다. 이 고개에서 학교(현재의 홍성중학교)까지 약 4km는 되지 않을까? 서문 밖 감리교회 앞을 지나 신의원 앞, 경찰서 우편국 앞, 조양문을 지나 홍주교를 건너 5일 장터 앞을 지나 언덕길에 올라서야 학교 정문에 당도한다. 이렇게 8개월 정도 홍성농업중학교를 도보로 통학하였다.

1951년 들어 좀 안정되면서 학제개편안이 제기되면서 교육법이 개정되어 국민학교 6학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의 오늘날의 학제로 개편되었다. 1951년 8월 홍성농업중학교(당시 6년제) 3학년을 마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었으나 가정형편으로 외지로는 진학할 처지가 되지 못하여 홍성고등학교를 지망하게 되어 9월에 고등학교 1학년생이 되어 또 대기티 고개를 넘나들며 통학하게 되었다. 새벽길 이슬이 많이 맺힐 때면 신발과 바지아래 가랑이가 젖고 비가 올 때는 옷이 흠뻑 젖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은 우장이 다양하고 흔하지만 그 당시는 헝겊우산도 구하기 쉽지 않았고 지우산을 쓰고 다닐 때라 바람이 심할 때는 소용없는 장비였다, 그때 겨울에는 왜 그렇게 눈이 많이 내렸던지…. 길을 나서면 신발이 덮일 정도로 눈이 쌓여 있을 때가 많았다. 대기티 고개를 넘으면 신발과 양말이 흠뻑 젖게 되고 빗돌골에 이르러서야 길이 트였다(새벽에 홍성으로 땔감나무 팔러가는 사람들 때문에…). 동성리, 봉생리, 사기리 등지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잡은 생선을 빨리 내다 팔아야 했기 때문에 큰 시장인 홍성으로 가기 위하여 이 고개를 넘나들었다.

가을에서 봄까지는 천수만 펄에서 채취한 살조개(참고막)를 한 가마니 씩 지고 이 고개를 넘어 홍성에 나가 장날에는 장터에서 팔고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홍성역 앞 양쪽 길가에 쭉 늘어놓고 앉아서 팔던 풍경이 그 당시 홍성 역전에서 볼 수 있던 광경이었다. 지금은 남당리 대하가 유명하지만 그 시절 가을 대하철이 되면 봉생리, 사기리 대하잡이 어민들이 홍성에 대해를 내다 팔곤 하였다. 홍성 장날이면 짚으로 두름을 엮은 찐 대하를 한광주리씩 머리에 인 아낙네 수십 명이 무리를 이루어 고개를 넘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머리에 인 광주리를 손으로 잡지 않고 두 손을 내 저으며 엉덩이를 마치 트위스트 춤을 추듯 내걷는 모습이 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도보 통학으로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을 올라가서 홍성 읍내에 나가 기숙하고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대기티 고갯길 30리 통학은 마감하게 되었다, 통학하는 나도 고생스러웠지만 무쇠솥에 불을 때서 새벽식사를 마련해 주어야 했던 어머니의 고생은 오죽 했겠는가! 오늘날 편리한 취사도구를 보면서 옛날 생각에 젖어 들곤 한다. 요사이 그 흔한 자전거도 구득하는데 경제적으로 부담되었던 때라 원거리 도보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언제인가 승용차로 지금의 홍성중학교 정문에서 갈산면 운곡리 집 마당까지 거리를 측정해보니 현재 도로로 15.2km이었다. 그러니 하루에 30여 km를 걸어 다닌 셈이다. 한참 성장기에 체력단력은 단단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1·4 후퇴 피난길이나, 군에 입대하여 행군할 때 다리나 발에 탈이나 고생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지만 나는 다행이 그런 괴로움을 겪지 않았으며 80대 중반인 지금도 기동에 불편함을 모르고 생활하고 있음은 대기티 고갯길 30리 왕복에 연유된 것이 분명하다
(홍성신문)
qqpp (2017-12-05 11:04:02)  
홍성신문 이기동 칼럼
qqpp (2017-12-05 11:22:45)  
삼준산의 남쪽과 서쪽으로는 홍성군 갈산면 가곡리·신안리·대사리·운곡리와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등이 주변을 감싸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서산시 해미면이 있다. 삼준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총 세 개 구간으로 할미봉을 통해 삼준산 압휘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 무네미 계곡으로 오르는 길, 산 중턱의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 등이다. 각각의 길들은 내포문화 숲길의 '깨달음의 길', 옛 부보상길인 대기티고개, 가곡기 노상마을로 이어지는 옛길 등 재미있는 역사유래를 끼고 있는 길들이 산재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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