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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진주강씨 晉州姜氏 - 은열공파



(아래)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 강민첨 장군 묘

**** (위) 강민첨 장군 영정 ( 姜民瞻影幀 )

▒ 지정번호 : 보물 제588호
▒ 지정연월일 : 1975년 5월 16일
  ▒ 시 대
: 조선 정조 12년(1788)
  ▒ 규모·양식
: 세로 80cm 가로 61.3cm 종축
  ▒ 재 료 : 비단 바탕에 채색
  ▒ 소 유 자
: 강희동ㆍ강영선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318-5 (국립민속박물관 보관)

강민첨영정은 고려의 명장이었던 강민첨(姜民瞻, 963∼1021)을 그린 초상화로 현재 전하는 것은 정조 12년(1788) 박춘빈(朴春彬)이 원본을 옮겨 그린 그림이다. 작품 상단의 찬문(撰文)과 그 옆의 기록에 의하면, 이 영정의 원본은 원래 우방사(牛芳寺)에 있었다고 하는데,〈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진주목을 보면 이 초상화가 진주 우산(牛山)에 있는 모방사(茅房寺)에 있다가 어느 시기에 우방사로 옮겨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우방사 원본을 1788년 진주병사(晉州兵使)로 재직했던 이연필(李延弼)이 화사 박춘빈에게 옮겨 그리게 한 것이다. 이 영정은 회양책사(淮陽冊舍)에 보관되어 오던 것이 문중에 귀속하여 오늘날까지 보존된 듯하다.
본 작품의 주인공인 강민첨은 1018년 거란족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강감찬(姜邯贊) 장군의 부장(副將)으로 출전하여 적을 크게 격파한 명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의 공으로 그는 공신이 되었다. 강민첨은 진주 강씨 은열공파(殷烈公派)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조선후기 문신 강백년(姜栢年)·강현(姜鋧)·강세황(姜世晃) 등은 그의 후손이 된다.
이 영정은 우안팔분면(右顔八分面)의 반신상으로 그려졌다.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홀을 들고 있는 주인공은 생전에 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그의 화려한 경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자의 호피는 옮겨 그린 18세기 후반의 초상화 양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큰 귀와 작은 입, 그리고 옆으로 찢어진 눈매 등 인물의 표정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또한, 홀대를 쥐고 있는 작은 손, 소매 끝단의 형식화된 옷 주름 표현, 전반적인 필치 등에서 전체적으로 경화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다. 박춘빈은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로 강민첨영정의 묘사수준으로 본다면, 당시 진주에서 활약하던 지방화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본 작품은 비록 화격이 그리 높지 못하고 이모본(移模本)이긴 하지만 현재까지 전하는 고려시대 초상화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고려시대 공신영정도의 형식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하는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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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강씨는?




  단일본으로는 우리나라 4대성

‘강(姜)씨는 신농(神農)씨의 후예로 알려져 있어 전세계의 모든 강씨는 한핏줄’이라는 강씨의 인구수는 약 130만 명으로 6대성에 속하나, 본관을 따지는 단일본으로는 4대성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강씨는 진주 단일본이기 때문이다. 진주 봉란대-봉알자리는 독특하게 평지보다 4~5미터 위에 있는데, 그 한가운데엔 알을 넣을 수 있게 폭 파인 구덩이가 있다. 그리고 가장자리 한켠에는 100여 년 전 세웠다는 시조 ‘강이식 장군 유허비’가 서 있다.

  본래 시조묘는 중국 길림성 역전에 있었다는데 모택동의 문화혁명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진주 강씨는 진주에만 1만 호 가량 살고 있으며, 인근에는 명석면 추동마을 등 집성촌도 여럿된다. 따라서 재실과 사당도 많은데 은열공 강민첨 장군을 모신 옥봉남동 은열사(殷烈祠)가 유명하다.
  끝으로 강이식 장군 유허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어 소개한다. 晋山華胄(진산화주):진주의 영화로운 진주 강씨. (*胄:투구 주. 장군의 상징으로 진주 강씨를 표현함)/ 菁川靈源(청천영원):남강이 영험한 근원이다/ 千波一本(천파일본):파는 여럿이나 본은 하나요/ 萬枝同根(만지동근):모두 한뿌리 자손이다/ 忠孝之家(충효지가):충효의 가문이요/ 道義之門(도의지문):도덕과 예의의 가문이다/ 世守敦睦(세수돈목):돈독하고 화목함을 지켜서/ 永垂後昆(영수후곤):영원히 후세의 귀감이 되라.

무와 문을 겸비한 가문

  시조인 강이식(姜以式) 장군은 고구려 도원수를 지내며 많은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597년(고구려 영양왕 8년)에 수문제가 침략할 야욕으로 무례한 국서를 보내오자 왕은 군신을 모아 놓고 이에 회답할 것을 논의할 때 그는 "이와 같은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것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이 이에 수긍하고 싸울 것을 명하자 군사 정병 5만을 이끌고 임유관(臨楡關)에서 수나라 군사 30만을 단번에 격퇴하고, 603년에 수양제가 군사 100만으로 다시 침략할 때 중신회의에서 요동성 일부를 떼어주고 강화할 것을 논의 했으나 이에 반대하고 싸울 것을 주장하여 을지문덕과 함께 요동성 살수(청천강) 등의 싸움에서 수군을 대파하는 등 공을 많이 세웠다. 그의 후손인 강진이 진양(진주)후에 봉해지며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

[강이식의 후손 강진(姜縉)이 신라(헌강왕) 때 태중대부 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으로 재임 중에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晉州)로 하게 되었다. 종파는 크게 은열공파·박사공파·소감공파·관서공파·인헌공파 등인데 은열공 강민첨(姜民瞻)이 가장 먼저 발원하였지만, 규모는 박사공파가 가장 크다.]

용맹스런 시조의 얼이 이어져 내려와 고려 때는 귀주대첩의 강감찬(姜甘贊) 장군(인헌공), 자주대첩의 강민첨(姜民瞻) 장군, 조선시대에는 강홍립(姜弘立) 장군 등의 대장군이 배출되어 가문을 빛냈다.
  그러나 진주 강씨는 무(武)에만 뛰어난 인물이 나온 것은 아니다. 학문과 예술에도 탁월한 인물이 나왔으니, 세종 때의 강희안(姜希顔)·희맹(希孟) 형제, 정조 때의 강세황(姜世晃), 선조 때의 강항(姜沆)이 유명하다.
  강희안은 세종 때 한글 창제에 기여했고,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로 ‘시서화 삼절(詩書畵 三節)’의 칭호를 얻었다. 희맹 역시 당대의 문장가이며 서화가로, 신숙주와 함께 「세조실록」을 편찬하였다. 강세황은 정조 때 시서화의 대가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글씨에는 어느 서체에도 능해 신묘의 경지에 들었다고 한다. 강항은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왜군의 포로가 되어 일본 오사카로 끌려갔는데, 그곳 사람들을 가르쳐 일본 성리학의 원조가 되었다.
  이밖에도 숱한 인물들이 나왔으니 조선시대에만 상신(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5명, 대제학 1명, 원수 및 장군 25명, 명신과 공신 51명, 문과급제자 227명, 청백리 7명을 배출해 가문이 번성하였다.

  또 일제시대에는 강우규(姜宇奎) 열사 등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그는 1919년 60세의 노인으로 서울역에서 조선총독으로 부임하는 사토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비록 사토는 암살하지 못했지만 수행원 등 37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의열단 항일운동을 한 강홍렬과 독립군 별동대장 강진해 등이 유명하다.   근대의 인물로는 부하의 생명을 구하고 산화한 강재구 소령, 전 국무총리 강영훈, 강신명˙강원용 목사, 무용가 강선영, 아동문학가 강소천 등 각계 각층에서 숱한 인재가 배출되었다.
 

  가문의 번영

-박사공파(博士公派)

중시조 국자박사(國子博士) 강계용(姜啓庸)은 1274년(고려 원종 15년) 통신사서상관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손자 강사첨(姜師瞻)의 5세손 중 첫째 아들 강회백(姜淮伯)의 후손을 통정공파(通亭公派), 둘째 아들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을 통계공파(通溪公派)로 구분하는데, 이들의 후손에서 가장 많은 인물이 나왔다. 통정공파의 통정 강회백은 고려말에 대사헌을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동북면도순문사 (東北面都巡問使)에 올랐으며, 성리학에도 밝았다. 그의 아들 강석덕(姜碩德)은 세종의 둘째 부인 영빈강씨의 아버지로서 개성유수, 지돈령부지사(知敦寧府事) 등을 지냈으며, 시와 글씨에 능했다. 강석덕의 아들 강희안(姜希顔), 강희맹(姜希孟) 형제는 통정공파의 대표적 인물로 꼽는데, 강희안은 세종 23년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직제학이 되어 정인지, 성삼문 등과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였다. 뒤에 단종복위에 연루되었으나 "참으로 현사(賢士)이니 죽이지 말고 중용하라"는 성삼문의 변호로 화를 면하고 뒤에 호조참의를 지냈다. 그는 시서화삼절 (詩書畵三絶)이라 불려질 정도로 이 방면에 있어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연산군때 우의정을 지낸 강구손(姜龜孫)은 그의 아들이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강맹경(姜孟卿)은 강희안의 4촌 형이다. 강희안의 동생 강희맹 또한 당대의 문장가이자 서화가로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빈객(世子賓客)이 되고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거쳐 좌찬성에 올랐다. 통계공파에서는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강사상(姜士尙)과 역시 선조 때 평난공신(平難功臣)에 오르고 이조, 병조판서를 거쳐 중추원판사를 지낸 진흥군(眞興君) 강신(姜紳)과 왕자사부 (王子師傅)를 거쳐 임진왜란 때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오르고, 진창군(晋昌君)에 봉해진 강인(姜絪) 형제가 빼어났다. 정묘호란의 주역으로 불리는 강홍립(姜弘立)도 강신의 아들이다. 특히 강인의 후손은 고종 때에 와서 강준흠(姜浚欽), 강시영(姜時永), 강문형(姜文馨), 강난형(姜蘭馨), 강우형(姜友馨), 강국형(國馨) 등 판서급 인물을 배출해서 명가로 꼽힌다. 이 밖에 인조 때 화포술(火砲術)을 전한 강홍중(姜弘重)이 있다.

-소감공파(少監公派)

중시조 강위용(姜渭庸)은 사도소감(司徒少監)을 지냈다.

-시중공파(侍中公派)

강원용(姜遠庸)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은열공파(殷烈公派)

중시조 강민첨(姜民瞻)은 인헌공파의 파조 강감찬과 더불어 귀주대첩의 전공으로 고려사에 크게 무훈을 세운 명장이다. 이 파에서는 특히 강백년(姜栢年), 강현, 강세황(姜世晃)의 3대와 강노(姜老)가 유명하다. 강백년은 조선 현종 때 관찰사, 예조판서,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는데, 문명(文名)이 높았다. 그의 아들 강현은 예조, 형조판서를 거쳐 좌찬성,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강현의 아들 강세황은 한성판윤과 각조 참판을 거쳤으며, 시서화(詩書畵)로 더 유명하였다. 강노는 강세황의 증손자로, 철종 때 대사간, 병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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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프강 족보 (대동보) ]]]]



중국 삼황중 神農氏(한, 동이족)........姜以式(고구려 570년대)'''''''''

..............강民瞻(은열공, 진주태생, 고려. 980년대) - 旦 - 輔 - 정협 -

여익 - 元鑽(학사공) - 윤지 - 수 - 壹遇(평창공) -

自海(10대, 사맹공- 아산시 동화리 정착) - 英老(당진공) - 希尹(감찰공)

- 森 - 昌慶 - 형 - 汝尙 - 世輔 - 一珪

- 坦 - 碩鎭 ( 20대, 홍성 갈산땅 이주-대기티 선영) - 濟永 - 挺

- 允燮(고조부) - 德善( 24대, 참봉공, 수릿골, 증조부) - 泰鼎

- 宗根 - 강熙昌(27대 볼프강) - 馝立(강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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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 한국문학작가연합 강화도 문학기행에 나섰다가

강화도와 우리 집안과는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족보와 교지등을 찾아보았는데 증조부께서 병인양요(1866)이후인

1901년에 강화도 전등사 서쪽에 있는 鼎足山史庫 관리책임자였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나의 증조부 德자 善자 할아버지는 나보다 딱 100년 먼저 태어나셨다

윗대 고조부는 은열공파 23대인 允자 燮자이시고 아래로는 아들 한분을

두셨는데 太鼎(大植)할아버지는 字 元叔  號 間松이시며

내가 국민학교 4학년때인 1971년에 돌아가셨다

정족산사고지 관리 업무는 추측컨데 병인양요 이후 별도 관리되다가

1910년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실록과 서적들이 옮겨질 때까지

봉직하시다가 일제에의해 파직되었거나 1931년까지 사고지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교지 일자와 비교해 볼 때 30여년 공직에 몸담으셨을 듯...

현재 실록과 서적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다



증조부  姜 德 善 (1860~1948 )
字 致順     墓 明德山下 신촌안산 乾座
광무 5년 [서기1901년 辛丑年] 통훈대부중추부사 通訓大夫中樞府事  
춘추관 강화정족산사고 수호총섭守護總攝 (정5품) 임명.
말년에는 홍성 수릿골로 물러나 덕숭산 수덕사 만공스님과 교류하셨고
떠도는 과객들을 불러다 대접하여 늘 집안이 북적거렸으며 또한
기근이 심할때 와룡천 인근지역에 자선으로 구휼미를 푸는등 선행하셨다함


은열공파 : http://blog.naver.com/dramo23/11301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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