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 강희창 시인 홈페이지




















  qqpp(2017-08-10 11:18:36, Hit : 560, Vote : 99
 [추억] 지리산 세 어른

** 볼프강은 21세기초 이중에 두분 만나 보았으나
   그렇게 훌륭하고 이름난 분들인 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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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세 어른


우천 허만수
“내가 안 보이면, 이곳에서 죽은 줄 알아라. 흔적 없이 지리산 품에 묻히고 싶으니 찾지 말라.”
이 말을 끝으로 1976년 6월경 그렇게 좋아하던 지리산 자락으로 홀현히 사라졌다.

봉명산방 변규하
2007년 6월12일 지리산의 품으로 돌아갔다.  
불일평전에 들어온지 1978년 10월1일, 30돌이 되는 날을 3개월 앞두고서였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따뜻한 사람이 있다'
지리산 호랑이 함태식.
그는 이제 지리산을 내려가야 한다.....2013년 4월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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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식

-함태식선생 지리산 하산에 부쳐 /서한태


흰덤봉 아래
빨치산 백골터에
백발의 팔순노인.
산에 몸을 부린 후
내려 보낸 골물은
사해를 덮고
떠나보낸 바람은
천지를 채웠구나
범같은 기개 산에 묻어
지리산 높은 마음과
섬진강 맑은 뜻대로
강단진 어깨 산을 흔들고
서늘한 눈매 삶을 꿰뚫었네

세상은 달리 흘렀지만
애써 남길 티끌은 없도다
그물에 걸리지 않아야 바람이고
울어 눈물을 남기지 않음이
참으로 새임을 깨우쳤으니
이젠 나도 山色따라
閑閑한 바람이
가슴을 휘젓는대로
어드메로나 흐를테지
아소, 벗님네야
그대가 밀지 않아도 안다
시간은 또 至難한 無碍이고
돌아보면 마치 거기가 여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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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나홀로 배낭 하나 짊어지고 나흘간 떠났던 생애 첫 지리 산행길

화엄사를 거쳐 쌍계계곡을 건너 佛日瀑布에 다다러서야 가슴의 답답함을 뚫고
한 글줄 읇으려다 너무 미미해진 나를 보았던 순간, 불일에서 무릅을 꿇고 자연에
합장하던 내 모습이 아직도 선하게 살아 있다

쌍계사에서 산으로 난 길을 따라 약 한 시간 남짓 올라가면 갑자기 아주 너른 공간이 나온다.
이곳이 바로 한때 이상향인 청학동으로도 지목 받던 ‘불일평전’이다.

평전에는 야영장과 쉼터, 그리고 주거공간이 있는데 삼신봉 산행이나 불일폭포를 답사하려면
오른쪽 길로 곧장 진행하면 된다.

이곳에는 鳳鳴山房(봉명산방)이라는 堂號(당호)를 단 오두막집이 있는데, 지친 산꾼들이
쉬어가기에 알맞는 곳이라 잠깐 뵈었던 山房 주인은 이름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지내다가
얼마전 2007년 6월 중순끼 홀연 승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하매 사이버에 예제 수소문 해본 바
모르던 소식들을 추스를 수 있었다

정비석님이 이름 붙여줬다는 봉명산방 한켠에 당시 나의 졸글 하나가 걸려 있길래
반가워 여든이 다되신 쥔장을 찾아 뵙고 감사함에 탁배기를 한 잔 올리며 귀한 말씀을
청했던 짧은 시간이 그 분과 이승에서 만남의 처음과 끝이었다, 후제 알고보니
그 분이 바로 세칭 지리산의 3명의 도인중 한분인 봉명선인 변규화 선생이셨던 것이다

하늘이 그의 운명을 가여워 했던지 건강하던 그를 새로 수행 토굴을 스스로 짓게하고
첫 수행에 들때에 참나무 장작 가스 질식이라니...믿기지 않는 대목이다
이제 지리산의 신비롭던 신화 이야기들은 무대 뒤로 사라져 가는가?

참으로 지리를 아끼고 사랑하며 참삶을 사시려 구도했으며 진정한 도(道)의 깨우침은
생활인으로 삶을 사는 것이고, 삶의 본질을 알고 실천하는데 있다고 說하시던 변규화님,
지리를 찾는 매니아들은 누구나 다 아는 지리지키미, 鳳鳴仙人  변규화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수집한 자료들을 모아 엮어 본다
  (볼프강 2007년 적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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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신문 논설고문, 동아대 교수이신 최화수님의 글을 그대로 옮김 ]


## '봉명산방' 변규화님(1)  

불일평전 오두막에는 '봉명산방(鳳鳴山房)'이란 휘호가 걸려 있다. 소설가 정비석 선생이
이곳을 찾아 붙여준 이름이다.
고려말 학자 이첨이 지리산을 찾아와 지은 시에 '산 중의 산'이라 하여
'봉황명(鳳凰鳴)'이라 쓴 구절이 있다. 거기서 따와 '깨달음의 완성'이란 뜻으로 '봉명산방'이란
이름을 지었다. 불일암, 불일폭포, 불일평전의 '불일(佛日)은 보조국사가 이곳에서 수도정진,
깨달음을 얻은 것을 기려 국왕이 '불일(佛日)'이란 시호를 내린 데서 유래한다.

이곳 야영장을 돌본 '돌쇠'님은 아주 '봉명공화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봉명공화국의 왕궁은
오두막집이다. 억새 이엉에다 벽 전체가 나무로 된 나무집이다. 자세히 보면 흙벽에다 디딤
나무를 붙인 다음 그 위에 한 자 길이의 짤막하고 가느다란 나무를 촘촘하게 붙여 놓았다.
뜰에는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연못인 '반도지(半島池)', 돌을 쌓아올린 석탑군의
'소망탑(素望塔)'이 있다. 아기자기한 돌탁자와 나무의자 등이 봉명공화국다운 모습이다.

불일평전을 이처럼 소박하고 아름답게 가꾸면서 신선처럼 살고 있는 봉명산방 방주는 변규화
(본명 변성배)님이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지리산의 이름난 털보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가 이 오두막에 정착한 것은 지난 78년 10월1일이다. 어언 23년의 오랜
세월을 하루같이 변함없이 살고 있다. 그는 이 오두막에 정착하기 앞서 불일폭포 위쪽의
상불(上佛)에서 10년 가까이 토굴생활을 했다. 그러니까 그의 실제 산중생활은 30년이 넘는다.

변규화님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정상적인 학교 생활과 사회 진출의 과정을 밟았다.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공군에 입대하여 36개월을 복무하고 만기제대했다. 그리고 기업체에
입사,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 60년대 초 미모의 규수와 결혼,
남부럽지 않은 '서울 생활'을 누렸다. 그의 부인은 대단한 미인이자 이름난 인텔리 여성으로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했고, 사랑스러운 아들도 한 명 두었었다.

그런 그가 어째서 서울 생활을 뿌리치고 지리산중으로 뛰어들었을까? 이 의문에 대해 그는
뜻밖의 이유를 들려준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되는 일이 없었다. 회사
자체가 얼마 못가 파산하고는 했다. 나 스스로를 깊이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끔 찾아왔던 불일암(불일폭포 위의 작은 암자)에 공부를 하러 오게 됐고, 상불에서
토굴생활(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도정진)을 했다. 그러다 이 오두막에 인연이 닿아 아주
머물게 됐다."

그는 지리산에서 '공부'하는 동안 지리산이 너무 좋아졌고, 자신의 삶터가 곧 지리산이라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가 토굴에서 10년을 '공부'하여 깨친 것이 지리산의 자연 속에서
자연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는 청담 스님 등 이름난 고승 아래서
공부를 하느라 스님 생활도 3년 동안 했다. 하지만 그는 종교가 아닌, 지리산의 자연세계로
귀의했고, 불일평전 '봉명산방'에서 영원한 자연인으로 살게 된 것이다.

"사회에서 조직생활을 하는 데는 인간의 본성에 맞춰 살아가기가 어려운 법이다. 사회생활을
통해서 명예나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명예나 돈을 떠나면 인간은 자연처럼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나는 명예보다 자유를 택했고, 물질적인 풍족보다는 자연세계의 정신을
선택했을 뿐이다." 사실 신선세계가 별 것이겠는가. 깨끗한 물, 맑은 공기, 아름다운 숲과
더불어 마음을 비우고 살면 그것이 곧 무릉도원이자 신선세계일 것이다.

불일평전 오두막에는 한번씩 그의 서울 부인이 다녀가고는 했다. 그녀의 뛰어난 미모와 세련된
서울말씨가 산꾼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인박명이라고 했던가. 서울 생활을
계속하던 그의 부인은 지난 86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아들 변성호는 어머니를
잃은 충격을 안고 불일평전 아버지에게 왔다. 그는 이곳에서 청년으로 성장, 원광대를 졸업한
광주의 규수와 결혼했다. 그 아들 부부는 봉명산방 별채에서 살며 불일평전의 대를 잇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불일평전 2세는 서울로 떠나갔고, 지금은 변규화님 홀로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지리산의 자연세계가 언제나 그와 함께 있다. 지난 주말 찾아간 필자
일행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어보니까 산이 불쑥불쑥 자라나!" "예?" "저기 봐요.
나무들이 저렇게 자라니까 산이 자라는 것이나 같지!" "...!" 우리 일행은 과연 변규화님다운
말이라며 감탄했다. 그렇다. 그는 지리산과 말동무하기에도 너무나 바빠 이 산을 결코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부기(附記)>
필자의 졸저 <지리산 365일> 제3권에는 변규화님의 아들인 변성호와 광주의 규수 김덕선이
불일평전에서 인연을 맺기까지의 숨은 얘기를 담은 '불일평전 러브 스토리'가 실려 있다.
변성호는 지난해 서울 국악예술학교 행정직원으로 다시 서울 생활을 시작했고, 김덕선은 지난
달 같은 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고 있다. 변규화님과 각별한 사이인 국악인 박범훈교수가
변성호의 장녀를 수양손녀로 삼고 있다. (2001년 3월28일)


## '봉명산방' 변규화님(2)  

불일평전에서 30년 산중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변규화님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꽤 오랜 세월이
흘러도 20여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조금도 그 모습이 변하지 않는데 있다. 그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하기만 하다. 신선의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될 수 없는 일이다.
변규화님은 필자와 단 둘이 대화를 할 때는 신비한 얘기도 곧잘 들려준다. 자신의 일상사에
대한 진솔한 얘기들을 거리낌없이 들려준다.

그가 들려준 많은 얘기들 가운데는 자연에 귀의하는 독특한(?) 방법도 있다. 달밤에 옷을
홀랑 벗고 달빛과 함께 뜨락을 거닐며 자연에 동화된다는 것이었다. "혼자 있을 때가 좋아요.
홀로 휘영청 쏟아지는 달빛에 실컷 취하는 것이지요. 아무도 없으니 무슨 거리낌이 있기나
하겠소. 나는 홀랑 벗고 이 뜨락을 거닙니다. 자연과의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것이지요.
그 완벽한 자유가 나에게는 소중한 보물이나 같지요."

30년 산중생활의 경지를 속세의 속물이 어찌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불일평전
에서의 이런 삽화만으로도 그이의 낙시유거(樂是幽居), 곧 그윽하고 궁벽한 곳에 사는
즐거움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이는 매처학자(梅妻鶴子), 곧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아 지내는 선비와도 같다. 그이의 천진한 웃음에서 상마지교(桑麻之交),
곧 뽕나무와 삼나무를 벗삼아 지내는 경지를 보는 듯하다.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1487년 지리산을 찾았던 남효온(南孝溫)은 기행록 '지리산일과'에 특이한
한 스님의 얘기를 썼다. 산길 40리를 걸어 어렵게 도착한, 감나무 대나무에 둘러싸인
보암(普庵)의 주지승 도순(道淳)이 그 주인공이다. '도순은 문자를 배우지 않고 도를
닦아 불법을 깨쳤다는데, 그는 "나밖에 아무도 없다"고 스스로 말하며, 불경을 외거나
염불하는 것을 그만두고 늘 음경(陰莖)을 내놓고 생활했다.'

지리산에는 많은 승려들이 수도정진하여 도를 깨쳤다. 서산대사와 벽송대사 진각선사 등 그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지리산에서 생활한 스님 가운데 아주 특이한 인물이
있다. 무기(無己)라는 이름의 이 스님 행적을 보면 참으로 완벽한 자유인이다. 집도 절도 없었지만,
"어떤 자가 집을 세웠건 내가 들랑거리기에 거리낌이 없노라"고 큰소리쳤다.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 그 기록이 있다.

'중 무기(無己)는 호를 스스로 지어 대혼자(大昏子)라 하였다. 그는 지리산에 은신하여 30년을
살면서 장삼 하나를 벗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과 여름이면 산(절)에서 나오지 않고 뱃가죽을
띠로 졸라맸다. 봄과 가을에는 배를 두드리며 산을 유람했는데, 하루에 서너 말의 밥을 먹어치웠다.
한 자리에 앉으면 열흘이 넘고, 일어나서 갈 때는 선시(禪詩)를 소리 높여 불렀다. 한 절에 유숙할
때마다 선시 한수씩을 남겼다.'

중 무기가 남긴 선시 가운데 그의 면모를 능히 짐작케 하는 '무주암' 시가 전해온다. '이즈음 본래
머물 데가 없었는데 / 그 누구가 이 집을 세웠네 / 지금은 오직 무기(無己)가 있어서 / 가기도
머물기도 거리낌이 없어라.' 이 무기란 인물은 누구였을까? '지리산 박사' 김경렬옹은 진각(眞覺)
선사가 아니었을까고 추측했다. 진각은 보조국사가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 하자 사양하고
지리산에 들어와 꽁꽁 숨어버렸다.

진각선사 혜심(慧諶)은 스승 보조국사 지눌(知訥)과 같이 지리산에 들어와 삼정봉 무주암에서
오랫동안 머물었다. 오늘의 송광사 전신인 수선사의 제1 세조사가 지눌이고, 제2 세조사가
진각이었다. 보조국사는 상무주에서 '선은 고요한데도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아니하며,
해와 달이 고른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을 깊이 갖고 분별을 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는 글을 읽는
동안 깨우침을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에 숨어든 진각은 '산중길'이란 이런 선시를 남겼다. '산길은 끝도 없으나 / 맑은 바람
걸음마다 일어나고 / 천봉 만봉을 두루 밟고 다니는데 / 상수리 나무만 이리저리 얽혀 있네 /
시내에서 발을 씻고 / 산을 보면서 눈을 밝히네 / 부질없는 영욕 꿈꾸지 않으니 / 이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랴.' 그렇다. 맑은 바람 걸음마다 일어난다면 홀로 지리산을 아무리 걸어간들 어찌
피로하거나 외롭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2002년 1월1일)

.........................

'노고단 호랑이' 함태식, 세석고원의 '산신령' 우천 허만수가 심은 '자연 사랑'은 신화적이기까지
하다. 부산의 성산은 '천왕봉 당일 등정'과 법계사 초막에 '사랑의 전설'을 남겼다. 부산의
김경렬은 칠선계곡 학술조사를 비롯, '다큐멘터리 르포 지리산' 등 저술활동을 통한 지리산
인문사적 규명에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다.

하지만 이들 '지리산 선각자'가 하나 둘 세상을 등지거나 노령 등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그들이 물러난 빈 자리가 엄청나게 크다. 노고단 세석고원 문창대 등에 이어 불일폭포도 썰렁하
기만 하다. 만인의 귀감이 될 그들의 지리산 사랑과 열정, 하지만 온갖 소음과 분탕질이 귀중한
발자취를 지우고 있어 안타깝다.

더 늦기 전에 '지리산 선각자'들을 기리는 기념관을 건립할 것을 제안한다. '역사기념관'이라며
빨치산 토벌 전적물이나 전시하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그도 모자라 산길에 빨치산 마네킹을
세워두다니…! 이건 아니다. '지리산 사랑'에 평생을 바친 선각자들의 발자취를 생생하게 재현,
지리산 사랑의 표상으로 삼아야 한다. .......................( 국제신문 2007. 7/2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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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한 앎이 우리를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지, 안다고 하는 것이 모르는 것에 비한다면
티끌에 지나지 않은 일이니 이 한잔의 차, 이 한잔의 술만도 못한 대수롭지 않은 일이요 한
순간의 영원함에 비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요......, 하며 박장대소했던 인물이 바로
지리산의 도인이요 자연활인의 진정한 지혜자였던 불일평전의 지킴이인생 변규화님이었지요.

....,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고 내세울 만한 아무 것도 가지질 못했던 떠돌이 인생이 모두가
외면하는 가난을 벗삼고 거짓과 투쟁하며 세상의 헛된 욕망을 버리면서 지리산에 올랐던 작년
여름 어느 날, 육신을 던져서 영혼의 자유와 진리를 얻으려고 무심코 지리산에 올랐던 것이
바로 저녁무렵 불일평전의 기억이자 추억의 발로였습니다.
.......
그 무거운 짐을 지게에다 지고 땀을 흠뻑 흘리시면서도 젊은 사람이 그리 힘이 없냐고 큰소리
치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그 맑고 넘쳐나시던 힘들이 벌써 어디로 갔길래 그리도 먼 길을
재촉하여 떠나셨는가요?

지리산에 죽지 못한다면, 나는 한반도에서 지리산에서 떠돌기에는 너무 서러워서 지구별을
다 떠돌아야 봐야 한다고 억지를 펼 때에도 "구곡학명지천명"의 대목에 이르러 감흥과 환희의
뜻맞춤에 선답의 열반을 나놨었습니다.    

                                         ---[ 오브넷 무오선사 추도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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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 근처 우천 허만수 추모비의 전면에는
‘산에서 태어난 산사람 우천 허만수’라고 적혀 있다. 어려운 우리 시대에 이런 사람이 절실하다. 짧은 인생을 아름답고 위대하게 살다가 홀연히 떠난 그의 추모비 뒷면에 새겨놓은 글을 옮겨 교훈을 삼고 싶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속에서 빛바랜 돌에 새겨진 글자도 판독이 어려울 만큼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비문의 전문이다.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에 오르는 이의 길잡이가 돼 살다 산의 품에 안긴 이가 있다. 사람들이 일러 산사람이라 했던 그분 우천 허만수님은 1916년 진주시 옥봉동 태생으로 일본 경도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재학 시 이미 산을 가까이하고자 하는 열정이 유달랐던 분이다.

님은 산살이의 꿈을 이루고자 40여 세에 지리산으로 들어와 가없는 신비에 기대 지내며 산을 찾는 이를 위해 등산로 지도를 만들어 나눠주기고 하고, 대피소나 이정표시판을 세우기도 하고, 인명구조에 필요한 데는 다리를 놓는 등 자연을 진실로 알고 사랑하는 이만이 해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길을 개척해 보였다. 조난자를 찾아 헤매기 20여년, 조난 직전에 사람들을 구출하거나 목숨을 잃은 이의 시신을 찾아 집으로 돌려보내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옮겨 치료한 일 헤아릴 수 없으며, 지리산 발치의 고아들에게 식량을 대어주고, 걸인들에게 노자를 보태어 준 일 또한 이루 헤아릴 길 없으니, 위대한 자연에 위대한 품성 있음을 미뤄 알게 되지 않는가.

님은 평소에 변함없는 산의 존엄성은 우리로 하여금 바른 인생관을 낳게 한다고 말한 대로 몸에 배인 산악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 줬으니, 풀 한 포기, 돌 하나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일이나, 산짐승을 잡아가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되돌려받아 방생 또는 매장한 일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랴. 님은 1976년 6월 홀연히 산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으니, 지리 영봉 그 천고의 신비에 하나로 통했음인가. 가까운 이들과 따님 덕임의 말을 들으면 숨을 거둔 곳이 칠선계곡일 것이라 하는 바, 마지막 님의 모습이 6월 계곡의 철쭉 빛으로 피어오르는 듯하다. 이에 님의 정신과 행적을 잊지 않고 본받고자 이 자리 돌 하나 세워 오래 그 뜻을 이어가려 하는 바이다.’

비석의 옆면에 ‘진주산악회 1980년 6월 8일 강희근 짓고, 이길성 쓰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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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폭포에서 만난 조각달


           시. 강희창 ( 2003. 7 )

모두가 외쳐대는 세상에
눈 가리고 귀 막아도
칠흑의 소용돌이 속
들린다 시끄러움

계곡을 쓰다듬다
폭포에 깔려 발악하다
다시 거슬러 오르니
보인다 조각달

양 가슴을 찌르는 예각
침.
정수리를 때리는 말씀
묵.

무거워 침묵이 무거워
상현으로 늘씬 휘어
산마루에 등을 기대니
깊은 곡에 미소 띄운 고요

나무들이 일제히 면벽한 까닭.




## 鳳鳴仙人  변규화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 : http://blog.naver.com/8296choi?Redirect=Log&logNo=39140605





http://cafe.daum.net/youmeanluck/OyU5/797?q=%C7%D4%C5%C2%BD%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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