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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fkan(2002-09-12 14:39:47, Hit : 10068, Vote :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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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매도 가고 광석이도 가고....





슬픈 김광석 노래.....이거 부모님께 들려주면 부부쌈 안한대요! 두분이 보쌈드시러 갈껄!

김목경(1989) ==> 김광석(1995) ==> 서유석 (remake)

김목경 작사.작곡







==== 김광석.

80년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자라난 노래운동의 뜨거운 두 상징이지요. 안치환님이 울분을 토하며 이 땅의 억압과 부정을 직선적으로 공격하는 데 어울리는 목소리를 지녔다면, 김광석님은 그 고통을 보듬어 안으면서 반성과 사색을 만들어내는 약간은 슬픔 어린 둥근 목소리의 소유자지요. 물론 세월의 흐름과 함께 두 상징은 넉넉하고 단단해졌습니다. 안치환님이 '소금인형'이나 '내가 만일', 또 다시부르기 음반 '노스텔지아'(1997년)를 통해 감춰두었던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드러내는 동안, 김광석님도 4집 앨범(1994년)의 타이틀곡 '일어나'를 발표하며 슬픔과 좌절을 딛고 자신의 생을 책임지려는 꿋꿋한 의지를 노래하기도 하셨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광석님은 그 굳은 의지를 충분히 노래로 표현하지 못한 채 1996년 정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고는 짧았고 소문은 무성했으며 안타까움과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긴 침묵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네요.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불멸'에서 예술가의 창작활동은 불멸에의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하였지요. 나는 100년도 살지 못하고 죽겠지만 나의 작품만은 영원히 남을 것이고, 그 작품을 통해 나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예술가가 남긴 작품이 망각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작품이 탄생한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 보편의 차원으로 떠오를 수 있느냐의 문제지요.

김광석님의 노래는 김광석님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들에게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했지만'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은 언제 들어도 그 시절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김광석님의 노래를 들으며 자주 기형도님의 시를 꺼내 읽습니다. 요절한 기형도님 역시 10년이나 어린 연배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지요. 두 분의 작품에는 모두 사랑에 대한 열망과 실연의 슬픔 또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김광석님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 아직도 남아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 안에 가득한데'('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의 그 텅 빈 방과 기형도님의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빈 집')의 그 빈 집은, 서툰 사랑을 잃은 모든 청춘들이 홀로 눈물 흘리는 곳이겠지요.

이제는 김광석님과 어떤 개인적인 경험도 나누지 못한 이들까지 합세하고 있군요. '이등병의 편지'는, 비록 영화의 히트를 등에 업은 것이지만, 김광석님의 노래가 갖는 포용력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동년배의 감상과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연배의 느낌과는 차이가 있겠지요. 허나 저는 김광석님의 동년배들이 김광석님의 노래에 대해 가지는 느낌만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가수와 나이가 비슷하고 공통된 경험을 나누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그 가수의 노래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김광석님은 또한 감동 잘 하는 영혼이었습니다. 김광석님이 돌아가신 1996년에는 '김광석의 인생이야기'와 '김광석의 노래이야기'란 제목으로 두 장의 실황음반이 나왔지요. 처음에 저는 이 음반을 사는데 주저했습니다. 대부분 이미 들은 노래들인 데다가 망자(亡者)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꺼림칙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결국 구입한 그 음반을 통해 김목경님이 만들고 노래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김광석님이 다시 부르게 된 이유를 육성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감동의 순간 말입니다.

"다음 보내드릴 곳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고 하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 원래 김목경씨가 불렀었고 제가 '다시부르기 두 번째'에 다시 불렀죠. 89년 여름 버스 안에서 이 노래 듣고 울었어요. 다 큰 놈이 사람들 많은 데서 우니까, 참느라고, 창피해서, 이으으윽 뭐 이러면서 억지로 참던 생각납니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보내드릴께요."

김목경님이 노래를 만들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철저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김광석님은 그 노래에 감동했던 것입니다. 눈물을 참던 그때 벌써 그 노래는 김광석님의 가슴으로 들어와서 생의 한 부분이 되었지요.

영화음악이 되었든, 인생이야기가 되었든, 김광석님의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김광석님을 불멸에의 길로 이끄는 안내자입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인터넷에 팬페이지까지 만들며 김광석님의 노래를 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내가 어디서 어떻게 김광석님의 어떤 노래를 듣고 눈물 흘렸는지 그 감동의 순간들을 나누고 싶군요. 그런 자리가 마련되면 '이등병의 편지'가 남한군 이등병 이병헌이 북한군 이등병 송강호에게 보내는 편지인 줄로만 알고 있는, 햇빛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조카의 손을 잡고 참석하겠습니다.

이 짧은 편지 역시 '이등병의 편지'만큼이나 김광석님의 불멸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소설가 김탁환(건양대 교수)



http://flvs.daum.net/flvPlayerOut.swf?vid=Vell2bY6DLo$&ref=


http://one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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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한해가 시작될 때가 되면 어렴풋이 다가오는 이름이 있다. 올해로 우리 곁을 떠난 지 15년이 된 가수 김광석이다. 이제 그는 우리와 한 공간에 거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귀를 기울여 그의 음성을 들어 보자. 그러니까 지금, 머나먼 독일 땅에서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이유가 있다. 모든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 그의 기일이었다. RIP.

동경했던 이들이 있었다. 모든 것을 이루고 저 세상으로 사라진 자들. 이제 육체는 더 이상 공기를 호흡하지 않지만, 그 그림자는 길게 꼬리를 늘어뜨러 산 사람들을 비춘다. 김광석의 그림자는 여전히 따사롭다. 18년 전에도, 18년 후에도.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건 지워질 수 없는 자취였다. 누구에게라도 그런 흔적을 남기는 순간은 있다.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밤중에 빛나던 그의 노래를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김광석은 지금도 내 곁에 있다. 그의 이름이 잊혔다면, 일상이라는 무게 때문이다. 그러나 불현듯 다시, 그가 결코 망각되지 않을 존재라는 점을 각인한다. 길을 지나다 간판을 본다. 제목은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다. 그의 노래다. 그는 그렇게 다시 내게로 온다.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그녀가 처음 울던 날’로 바뀌고 어느새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된다. 그렇게 한바탕의 추억놀이가 시작된다. 추억은 가끔 진부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련함은 추억을 증폭한다. 약간은 유치한 되새김질마저도 아름답게 하면서.


작년 추석 연휴였다. 서울 지역엔 어마어마한 비가 내렸다. 그칠 줄 모르는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렸고, 나는 우울해졌다. 알다시피 모든 이에겐 우울함이 있고, 그날은 내가 그 환자였다. 갑자기 김광석의 노래가 듣고 싶어졌다. 허나 먼지 구덩이 속 음반을 꺼내기는 귀찮았고, 전세계인의 추억 재생소 유튜브에서 그의 동영상을 검색하기로 했다. 세상은 이렇게 좋아졌다. 클릭! 클릭! 주루룩 추억이 흘러갔다. 그의 노래들이 정렬되었다.

잠시 향수를 끌어안고 있을 무렵, 나는 흥미로운 동영상을 발견했다. 그의 노래 아래에 달린 이상한 댓글들. 한국어가 아니었다. 이건 어느 나라 말일까. 그것들은 대부분 독일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독일에서 생뚱맞게 김광석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었을리는 만무했다. 이 모든 사건엔 뭔가 계기가 있을 터였다. 궁금함에 목마른 나는 링크를 타고 사건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몇 번의 수고 끝에 드디어 출발점이 된 뮤직 비디오와 대면했다. ‘Kim Kwang Seok’. 독일 언더그라운드 힙합 그룹 오르존스(Die Orsons)의 노래였다. 다시 검색이 시작되었다. 서핑을 통해 번역된 노래가사를 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노래의 가사는 명료하다. 우리(독일)보다 이력서가 중요하고, 개고기를 먹는 나라에 홀로 노래하던 한 가수가 있었다. 그는 방송에서 노래하길 꺼렸으며, 사람들을 모아놓고 노래하길 즐겼다. 그런데 그는 1000번째 공연을 마치고 자살했다. 그는 한국의 밥 딜런이자, 커트 코베인이다. 유튜브에 그의 이름을 입력해라. 그리고 흐느껴라. 가사의 내용은 이러했다. 이건 일종의 트리뷰트 송인 셈이다.




이들은 왜 김광석을 부르고 있을까? 무엇보다 한국과는 아무 연관도 없을, 유럽의 힙합 보이들이 어떻게 그를 알게 되었을까?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쉽게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름의 추리가 시작되었다. 결론은 이랬다. 노랫말 중에 유튜브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웹을 돌아다니다 김광석의 보석들을 구했을 것이다. 지극히 낯선 언어의 바다. 그러나 노래는 그런 장벽을 쉽사리 뛰어넘는다. 그게 음악 언어의 보편성이다. 그렇게 그들은 헌정곡을 쓰기로 결심한다. 아마 독일 노래 ‘킴쾅제옥’은 그렇게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킴쾅제옥이든 김광석이든, 독일어든 한국어든 문제될 것이 있을까? 차근차근 댓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모두들 찬사일색이었다. 이렇게 가슴에 밀어 닥치는 짠한 음악을 알게 해준 오르존스에게 감사한다는 말. 김광석의 노래를 한 글자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가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다는 말. 2010년 죽은 김광석은 세상의 다른 편 끝에서 불현듯 출현했다. 그의 노래에 감성이 마비된 독일인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건 현재진행형이며, 문제의 동영상의 클릭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좀 더 주의 깊게 보았다면, 그들이 새겨 넣은 수많은 추모의 인사도 함께 만나보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의 앨범이 있다. 1995년 발표된 [다시 부르기 2]. 다른 가수의 노래들을 원곡들 저리갈 만큼의 절창으로 재해석한 걸작 앨범이다. 여기에 실린 모두가 좋은 노래들이고,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올 만큼 저릿하고 뭉클한 순간들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사연이 있는 노래다. 아이를 키우고, 그들이 자라던 모습을 평생 함께 한 부부의 마지막 순간 이별 이야기다. 신파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폭포수 같은 눈물을 정말 병신 같이 쏟아내고야 만다.


그의 목소리는 정말 아프다. 청자의 감성 수치를 최대치로 올려놓고는 본인은 정작 담담하다. 그건 신비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무섭다. 언젠가 그의 노래가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언젠가부터 감동에 무감각해진 자신을 본다. 실은 이젠 그 모든 것을 잊었을까봐 두렵다. 그건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를 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실은 어제의 나로부터 사라져가는 나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의 노래를 틀어놓고 쓴다. 유한성의 중심에서 세상을 다 안다 겁 없이 외치는 우리 인간들은 정작 자신들의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그러다 서른이 오고, 매일 이별하는 마음으로 인생엔 쓴맛이 섞여 있다 위안하다 숨 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꿈은 깨어진다. 그렇게 소식마저 알 수 없는 타인이 된 채 잊히는 것으로 남는다. 때로 김광석의 어법은 잔인하다. 그러나 그 속에 든 파편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도록 오늘의 나를 자극하고 가르친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은 평균대 위를 걸어가는 광대와도 같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좌절하고 누군가는 실연할 것이며 누군가는 입시를 실패할지도 모른다. 더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을 잃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한 일상의 평균성이다. 그러나 만일 그의 노래가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빗면을 타고 다시 떨어질 바위를 열심히 굴리는 우리네들에게 삶의 희열과 낭만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노래도 진리가 될 수 있다. 물론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 속에서 사람과 부대끼며 사람을 위한 노래를 사람의 목소리로 담아낸 위대한 보컬리스트만이 가능하다. 그의 이름은 김광석이다.

이경준/ ‘100비트’ 필자




강희창 (2002-09-12 14:46:38)
볼프강은 부모님,장인,장모 모두 돌아 가셨는데두
이거이 와이리 와닺느다죠?
벌써 2/4분기 이후에 한30번은 들렀나보네
볼프강 (2002-09-13 09:47:27)
혹시 이노래 듣고 눈물이 나오신 분은 이름(멜)을 적어주셈
그럼 다른 자료 보내주겜

1. 볼프강
2. 도트아이
...
...
수메루 (2004-06-29 14:49:14)
저요....ㅠ.ㅠ
qqpp (2011-01-17 16:19:20)  
http://qqpp.com/bbs/data/literature/robubu.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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